재래시장 활성화, 상가주인과 건설자본 위한 '돈잔치'

전철연 | 2006.08.01 12:50 | 조회 6491


동작구청, “돈 더 받아내려는 노점상들, 거지근성 있다”

25일 오전 서울 흑석동 중앙대부속병원 인근에 위치한 흑석시장 안. 하얀색 헬멧을 쓴 건장한 남자 50여 명이 시장 길목을 가로막고 서 있다. 그 바로 앞에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20여 명의 노점상과 상가 세입자들이 땅에 주저앉아 울부짖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하얀 헬멧의 남자들에게 연신 거친 욕을 내뱉던 한 할머니는 “억울해 못 살겠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하얀 헬멧의 주인공들은 철거현장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역철거반원들. 이들은 이날도 시장 노점상과 세입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흑석시장에 투입되었고, 상인들은 온몸으로 이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상인들은 노점 가판에 있던 계란과 파 등을 던지며 ‘투채전(投菜戰)’을 벌인다. 시장 안은 계란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고성, 그리고 탄식이 터져 나온다. 한 눈에 이곳이 쫒아내고자 하는 이들과 남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전쟁터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50-60대 여성들인 상인들이 하얀 헬멧의 그들에게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수십 년 지켜온 삶의 터전, 하루아침에 철거

동작구 흑석3동 95-1번지 흑석재래시장. 개설된 지 40년이 지난 이곳은 동작구의 대표적 재래시장 중 하나였다.

이제는 전쟁터가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흑석시장은 좁다란 길을 따라 자판과 노점이 있고,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들과 손님들이 흥정하는 소리로 떠들썩한 장터였다. 대형할인마트처럼 주차를 시킬 공간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100원을 넣고 쇼핑카트를 끌 수도 없지만, 흑석시장은 40년 동안 나름대로 이 지역의 ‘쇼핑메카’로서의 역할을 지켜왔다. 그리고 상인들은 수십 년 간 이곳을 삶의 터전삼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종문 할머니도 그 중 하나다. 올해 68세의 전종문 할머니는 20년 간 흑석시장 안에서 떡볶이와 순대 장사를 해왔다.

“지금은 이렇게 됐어도, 옛날에는 중앙대학교 학생들도 흑석시장을 많이들 찾았어.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지금까지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데 이제 살길이 막막해”

전 할머니의 5평짜리 장사공간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지난 달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용역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쳐 집기를 부수고, 자판을 모두 철거했다. 20년간 꾸려온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지만, 보상은커녕 구청, 사업시행자, 건설회사 그 어느 곳과도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지난 2004년 12월 7일 서울시는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고 ‘현대화’한다는 명분으로 흑석시장 재개발사업을 인가했고, 흑석시장 1,730평 대지에는 25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으로 현재 상가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고 ‘현대화’한다는 취지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전종문 할머니의 경우처럼 영세 상인들과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 없이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현재 흑석시장 상가 세입자들과 노점상 20여 명은 시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43일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삼례 흑석철거민대책위원회(흑석철대위) 위원장은 “대부분의 상인들이 수십 년간 흑석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영세 세입자들인데, 구청과 시행사는 일방적으로 철거를 진행하며 영세상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삼례 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장사할 수 있는 임시시장 마련과 재개발사업 완료 후 주상복합건물에 공동으로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져 재래시장이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영세 상인들과 노점상들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에 이르는 주상복합건물에 자리를 얻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흑석철대위는 사업시행자인 흑석시장재개발조합 명의로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재개발조합은 불법적인 강제철거로 화답하고 있고, 관리감독 관청인 동작구청과 경찰은 불법적인 강제철거를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25일에 이뤄진 철거에서도 용역철거업체는 법적으로 철거가 불가능한 명도소송이 진행 중인 상가에 들이닥쳐 세입자를 끌어내고, 상가를 철거했다. 철거업체의 불법적인 철거로 인해 세입자들과 용역업체직원들의 충돌이 계속되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잠시 ‘머물다’가 사라진다.

때문에 농성중인 세입자들은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흑석시장 재개발사업은 상가와 토지 주인들로 구성된 재개발조합과 건설자본을 위한 돈 잔치라고 입을 모은다.

법은 있으나마나, 현직 동작구 구의원이 사업시행자

현재 흑석철대위가 요구하고 있는 임시시장 마련과 재개발 후 상가 임대점포 마련 등은 재래시장재개발 사업의 근거법인 ‘재래시장육성을위한특별법’(재래시장특별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흑석시장 세입자들의 요구는 법적으로도 정당한 요구이지만, 사업시행자인 재개발조합은 이를 무시하고, 관리감독 할 동작구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흑석철대위 회원들은 용역철거업체의 폭력적인 철거도 철거지만, 이를 지시하고 묵인하고 있는 재개발조합과 동작구청의 행태에 대해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작구청이 시장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사업시행자와 세입자들 간에 중재를 서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재개발조합을 비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소속 현역 동작구의회 우길웅 의원이 사업시행을 맡은 흑석시장재개발조합의 조합장인 것으로 알려져 세입자들의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흑석시장이 위치한 흑석3동 출신으로 4선인 우길웅 의원은 흑석시장번영회 대표를 맡아왔고, 현재 동작구의회 복지건설위원회 소속이다.

전종문 할머니는 “531지방선거 전에는 눈치보면서, 세입자들과 대화하는 척 하다가 선거에 당선되자 바로 세입자들을 내몰았다”며 우길웅 의원과 동작구청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실제로 흑석시장에 최초로 철거용역반원들이 투입된 때는 지방선거 2주 뒤인 6월 14일이었다.

정삼례 흑석철대위 위원장도 “우길웅 의원도 흑석시장 안에서 소방도로를 점유하고 장사를 하지만, 그 사람이 장사를 하는 곳은 철거반원들이 건들지도 않는다”며 “도대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시공사가 분진막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철거를 진행하고 있어 흑석시장 일대에는 시멘트 먼지가 자욱하다. 시장 주변 시민들이 먼지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지나고 있다/ 이정원 기자

동작구청, “철거민들, 거지 근성이 있다”

한편, 동작구청 관계자는 흑석철대위 회원들의 주장에 대해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사업시행자인 조합에서 마련하는 것”이라며 “구청은 인가를 내주고 법적으로 규정된 대책을 마련했는가를 검토하면 된다”고 공을 재개발조합에 넘겼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재개발조합이 시장 노점상들에 대해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노점상은 원래 불법이고,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의 말을 다 들어주면, 모두가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며 “노점상에 대한 대책은 없고, 정식으로 임차계약한 상인은 무주택인 경우 상가 입주권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농성 중인 흑석철대위의 요구와 관련해서는 “저 사람들은 다 해줬는데도, 돈 더 달라는 것”이라며 “거지 근성이 있다”고 철대위 회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 관계자는 25일의 경우처럼 명도소송 중인 상가에 대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점과 관련해 “그런 일은 없다”고 불법적인 상가철거를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공가만 철거하고 있고, 소송이 진행 중이고 장사를 하고 있는 상가에 대해서는 철거를 하지 않는다”며 “공가 철거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업무방해”라고 반발했다.

한편, 민중언론 참세상은 사업시행자인 흑석시장재개발조합의 입장을 듣기 위해 조합사무실을 방문했으나, 조합 측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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